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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익절무새, 블로그를 시작하며.....

익절무새 2025. 6. 12. 22:20

나의 어린시절은 정말 구질구질하다고 해야할까? 
그냥 밑도 끝도 없이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시절(내가 국민학교 거의 마지막 세대였다.)
나는 미술이랑, 음악이 끔찍하게도 싫었다. 
다른것 때문이 아니라 무슨 수업시간때 마다 준비해야될 준비물들이 그렇게 많았던건지
 
미술시간마다 찰흙, 수수깡, 도화지, 물감, 파렛트, 붓, 스케치북.....
음악시간마다 리코더, 단소, 탬버린, 트라이앵글, 케스터네츠?, 아코디언?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중에는 과학시간때도 과학상자니 뭐니 하이튼 끝도 없는 그 지긋지긋한 준비물들 때문에 나는 미술, 음악, 과학 시간때 마다 복도에 나가서 손을 들고 있어야 했다.
 
그러다 어느날 나의 담임이었던(선생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다) 여자는 급기야 한살 터울의 같은 학교에 다니던 내 누나를 불러서 준비물을 챙겨오지 못하던 나를 대신해 꾸짖었다. 
부모도 아닌 한살 위의 나의 누나를 말이다.
 
이쯤되니 어린 마음에도 나는 더이상 눈에 보이는게 없었다.
그 다음부터는 미술 시간전에 일부러 다른 아이에게 시비를 걸어서 싸움을 만들었다.

그러면 몸은 다치고 벌은 받을지언정 더이상 준비물을 챙겨가지 못해서 혼날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때부터는 마음이 너무 홀가분했던것 같다.
 
지금 생각해봐도 도대체 왜 초등학생들 한테 그렇게 많은 준비물들을 요구하고 준비해 오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고,
도대체 이런 교육 과정을 만든 교육 당국자들이 누군지 꼭 알고 싶다.

그리고 그들에게 꼭 물어보고 싶다.
니들이 부모님한테 돈받아서 생각없이 준비해갔던 그 준비물들이 누군가에겐 그 수업 전시간부터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살인무기 같았다는 것을......  

니들의 그 생각없는 교육정책 때문에 누군가의 어린시절에서 미술과 음악이라는 과목이 사라졌다는것을....
 
재활용품을 이용한 미술수업, 본인이 직접 준비한 물건으로 만들어보는 악기....

학교라면, 창의성을 가장 중요시한다는 교육의 요람이라면....
적어도 기초교육인 초등교육에서 만큼은 돈으로 수업 참여의 허들을 만드는 짓따위는 하지 말았어야 하는것 아닌가 ?
 
물론 이러한 준비물 괴롭힘은 초등학교에서 끝나지 않았다. 
중학교까지 연결되었다.
그래도 중학교는 깔끔했다.
그냥 몇대 맞으면 그만이었으니까....
맞는 것은 괜찮다. 
마음에 든 멍보다는 몸에 난 멍이 훨씬 덜 아프고, 회복도 빠르니까...
 
지금도 초등학교에 준비물을 챙겨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이글을 읽는 초등교사님들이 있다면 부디 수업시간에 준비물을 챙겨오지 않는 아이를 꾸짖지 말아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그 작은 아이의 세상속에서 챙겨가지 못한 그 준비물들은, 나이가 먹고 덩치가 커져도 그 어른의 마음속에 영원히 풀리지 않는 응어리로 남게된다.

그리고 아이를 둔 부모님들은 여유가 되신다면 꼭 아이가 준비물을 챙겨갈때 여분으로 한개 더 챙겨서 혹시라도 준비물을 챙겨오지 못한 친구가 있다면 도와주라고 꼭 당부드리고 싶다.
 
초등학교 시절 내가 이렇게 어렵게 살았던 이유는 밝히기 힘든 가정사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때 부터 부모님이 아닌 할머니의 집에서 생활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서러운 경험들을 실컷하고 나서 어느날인지 기억은 잘나지 않지만,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한 여름밤 나는 초등학교 구석진 벤치에서 3시간인가를 진심으로 서럽게 울었던 것 같다.

그날이 내 생일이었다는 것... 그 외 정확히 어떤 서러운 일들이 또 있었는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돈이 얼마나 한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 수 있는지 절실하게 깨달았고,
내가 크면 무슨 일이 있어도, 누가 무슨 말을 지껄여도, 반드시 미친듯이 돈을 벌겠다고 다짐으로 표현하기에는 그 크기가 몇만배는 더 큰 아주 무겁고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 때문인지 나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철이 정말 빨리 들었던것 같다. 
집이 어렵다는것을 깨닫고 생활보호대상자를 선정한다고 하는데, 거림낌없이 학교 교무실로 찾아가서 신청을 했던것 같다.
생활보호 대상자가 되면 이래저래 면제 받는것도 많았고, 하얀색 의료보험증으로 병원을 가면 거의 돈을 내지 않았던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고등학교를 거쳐서 이래저래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입학하게 된다.

어린 시절 음악, 미술과 담을 쌓고, 그래서 인지 악보 위의 콩나물이 몇분 음표인지 그런 기본적인 것도 나는 알지 못한다.
고등학교 연합고사때도 음악, 미술은 보지도 않고 한 번호로 다 찍어 버렸다. 
 
다행히 중학교 2학년부터는 다시 엄마와 함께 살게 되었지만, 집안 사정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안좋아 졌던것 같다.

그래도 할머니 집에서 생활했을때는 친적들한테라도 많은 도움을 받았었지만,
엄마와 함께 살게되면서 부터는 이런 도움마저도 싹 끊겨 버렸다.
 
그때부터 나는 한평 남짓한 아주 조그만 방에서 10년이 넘는 기간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조그만 방에는 하루에도 수마리의 엄지손톱만한 바퀴벌레들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출몰했었다.
잠을 자고 있으면 이불속으로 기어 들어올때도 있었고, 언젠가는 자고 있는데 얼굴 위를 기어오르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손톱만한 바퀴벌레들은 빠르기도 우사인볼트 급이어서 잡는것도 여간 어렵지가 않다.
뭔가 내려칠려고 들기만 해도 벌써 구석으로 슥하고 숨어 버린다.
 
그 조그만 방을 매일 치우고 쓸고 닦아도 어느새 벽면 틈 사이를 비집고 기어나와서 먹을것도 없는 작은 방을 산책하곤 했다.
지금도 밤만되면 방 벽지를 갉아대던 그 사각거리는 소리를 잊을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날 뭔가를 쓰고 있던 와중에 내 책상 한쪽으로 역시나 엄지손톱만한 바퀴벌레가 기어 올라왔다.
마침 들고 있던 종이 뭉치로 내리쳤는데, 빗맞았는지 녀석은 잽싸게 모습을 감춰버렸다.
그런데 종이에 묻어있던 화이트가 빗맞으면서 녀석의 날개 아랫쪽이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도 바퀴벌레는 역시나 내 방을 기어다녔고, 나는 바퀴벌레 킬러가 되어 보는 족족 그것들을 처단했다.

그런데 어느날 일상같은 바퀴벌레 처단식에서 익숙한 모습을 마주했다.
녀석은 날개 아랫쪽이 하얗게 변해있었고, 이 녀석이 지난번 내 책상위를 배짱좋게 올라왔던 녀석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너 잘걸렸다. 하고 내리치려는 순간... 
자세히보니 녀석은 다른 녀석들에 비해 확실히 체구가 작았다.
그리고 뒷다리 한쪽이 없어서 그런지 움직임도 확실히 둔했다.

바퀴벌레라면 극도로 혐오하던 나였는데, 갑자기 녀석을 죽이지 못하고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리곤 죽일순 없어도 함께 할수는 없었기 때문에 녀석을 놀래켜서 구석으로 숨게 보내버렸다.
 
그렇게 약 2년 인가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또 몇백마리의 바퀴벌레를 처단했고, 중간 중간 그 녀석을 종종 마주했다. 
볼때마다 곧 죽을것 같았던 녀석이 똑같은 죽을것 같은 모습으로 매번 내 눈앞에 나타났다.
 
이것은 연민인가?
아니면 그 바퀴벌레에게서 내 모습을 본것인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녀석을 죽이지 못했다.
 
그리고 20대 후반을 향해가던 어느날 나는 드디어 그 집을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 조그만 방에서 계속 살다간 나 역시 평생 조그만 인생속에 갇혀살게 될것만 같았다.
 
그리고 짐을 챙겨 집을 나오려던 그날 나는 다시 날개 아랫쪽을 하얗게 색칠했던 그 녀석을 마주했다.

바퀴벌레의 수명이 2년이라는데, 녀석을 처음봤을때 부터 어림잡아도 3년은 된것 같은데 그녀석은 어떻게 그때까지 살아 있었던건지 아직도 의문이다.

아무튼 녀석은 이전보다도 훨씬 약해져 있었다.
움직임도 더 느려졌고, 더듬이의 움직임도 부자연스러워져 있었다.
 
나는 방을 나가려다가 한 10분정도 앉아서 녀석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나에게 작별인사를 하려고 나타난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한쪽 다리를 자르고 죽이려 했었지만 그래도 끝내 처단하지는 않았던 것에 대한 감사인사를 하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가 그 집을 나가려던 그 순간 내 눈앞에 나타났던 그 바퀴벌레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것 같다.

그때 그시절 내방 속 바퀴벌레


그날 그 집을 나선 이후부터 나는 미친듯이 돈을 벌고 모으고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부자라고 말하기는 애매할 순 있지만 순자산이 분명 대한민국 상위를 차지한다고 생각할만큼 제법 많은 돈을 모으게 됐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아버지 사업은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었고 지금은 큰 부자가 되셨다.
이런걸 보면 사주라는게 참 신기하기는 한 것 같다.

내 사주를 보면 어린 시절은 최악이고, 나이를 먹을수록 대성한다는 사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몇년 전에 알게 되었고 그게 너무 신기했다.
 
누군가 나에게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냐고 묻는다면, 다는 절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그 비참하고 끔찍했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라는건 나보고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나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게 없었던 그 어린 세상으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치만 단 한순간으로만 돌아갈 수 있다면,
딱 한순간, 어린시절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날 초등학교 구석 벤치에 앉아 서럽게 울던 나에게 돌아가서
다 괜찮아 질거라고, 니 잘못이 아니라고,,,,,,
그 말 한마디만 전해주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나의 어린시절의 그 가난함을 경멸한다든지 증오하지는 않는다.

나의 어린시절의 그 가난함이 그 결핍이 지금은 내 인생의 단단한 바닥이 되어서 어려움에 대한 극치가 다른 사람에 비해 나는 매우 많이 높다.

다른 사람들은 어렵다고 하는일, 힘들다고 하는 일도 나는 도대체 이까짓게 뭐가 힘들다는 건지 이해할수가 없었고,
어쩌다 해외로 출장을 가서 지저분한 환경에서 생활하더라도 나는 도대체 이까짓게 뭐가 대수라는 건지 이해할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는 세 가지 행운이 있다. 

첫째 가난했기에 어릴 때부터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으로 세상의 경험을 두루 쌓을 수 있었고, 

둘째 몸이 약해 항상 운동에 힘써 늙어서도 건강을 유지했으며, 

셋째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기에 세상 사람들을 나의 스승으로 여기고 언제나 배우는 일에 게으르지 않을 수 있었다
.”
 
나는 이 말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몸과 마음을 다해 동의할수 밖에 없다.
 
아이를 크게 키우고 싶은 부모님이 있다면,
아이에게 부유함이 아닌 결핍을 먼저 알려줘야 한다.
 
결핍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왜 부유해져야 하는지에 대한 필요성을 절대 마음으로 느낄 수 없다.
머리로는 배울수 있겠지만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진정으로 부를 추구할 수 없다.
 
"돈으로는 행복을 살 수 없다."
"인생을 사는데 돈이 전부가 아니다."
"돈이 있다고 해서 가족이 행복해 지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결핍을 머리로만 겪었고, 마음으로 그리고 몸으로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다.
 
결핍을 마음으로 그리고 몸으로 깨달은 사람이라면 돈에 대한 정의가 절대 부에서 부터 시작되지 않는다.
일단 결핍에서부터 시작해야 된다.
 
돈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행복해 지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불행해 지지 않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이다.
 
정말 결핍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돈과 행복에 대한 정의가 이렇게 나와야 맞는 것이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내가족 내 주변의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언제든 겪을 수 있는 경제적인 어려움
그리고 그 경제적인 어려움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비극적인 결핍의 상황들이 너무 무섭고 끔찍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아서 악착같이 돈을 추구하고 벌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많은 '행복은 계좌로 채울 수 없다' 주의자 들이 많은 것 같다.
 
인생을 살면서 진정한 결핍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 
내가 바닥을 찍었구나를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
 
이런 분들은 제발 함부로 이런 말들을 퍼뜨리지 말고,
자기 인생을 스스로 돌아보면서 이런 결핍을 느끼지 않게 해주셨던 본인들의 부모님께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주변에 돈에 미쳐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에 어떠한 결핍이 있었는지
어떠한 사연이 있었는지....
이러한 결핍과 사연을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그들을 욕하고 시기하지 말기를 바란다.
 
부를 경시하고, 다른 사람의 노력을 깍아 내리는 사람은 이미 시작부터 가난한 마인드를 마음속에 품고
돈을 쳐다보면서도 가난의 구렁텅이로 몸을 던지고 있는 것임을 분명히 깨달았으면 좋겠다.
 
어린시절 내 작은 방 한구석을 차지했던 날개 아랫쪽이 하얗게 변해버린 그 바퀴벌레처럼 간절하고 지독하게 부자가 되기를 꿈꾸며 익절무새 블로그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그동안의 나의 투자 경험과 앞으로의 경험들을 블로그에 담아서 나와 나의 아이들과 혹시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그 누군가를 위해........

익절무새를 시작하며....